순교자 폴리캅
그는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 즉 위대한 사람이나 대수롭지 않은 사람, 귀족이나 비천한 사람,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보편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드디어 떠날 시간이 되었으므로, 그들은 폴리갑을 나귀에 태워 서머나로 데려갔으니, 그날은 큰 안식일이었다. 폴리갑을 맞을 평화의 왕 헤롯과 그의 부친 니세테스(Nicetes)는 폴리갑을 자기의 마차에 태운 뒤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면서 ‘가이사를 신이라고 부르고 그에게 제사를 지내어 목숨을 구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해로운 일이냐?’고 말했다. 폴리갑은 처음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끈질기게 권했기 때문에, 그는 ‘나는 당신들의 충고대로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그를 설득하는데 실패하자, 무서운 말을 하며 그를 마차에서 밀어버렸으므로 그는 허벅지를 삐었다. 그러나 그는 뜻을 바꾸지 않았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걸어서 경기장으로 끌려갔다. 당시 그곳은 너무나 소란스러웠기 때문에 그가 경기장으로 들어갈 때 하늘로부터 폴리갑에게 ‘폴리갑, 강건하며 대장부답게 싸워라’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우리 형제들 중 많은 사람이 그 말을 들었다. 폴리갑이 앞으로 끌려 나갈 때에 그가 잡혔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큰 소란을 일으켰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자 지방 총독은 그에게 폴리갑이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총독은 그에게 그리스도를 부인하라고 권면하면서 ‘당신의 나이를 생각해 보시오’라고 말했다. 그밖에도 그들이 항상 사용하는 표현을 사용하여, ‘신이신 황제의 이름으로 맹세하시오, 회개하고 신들을 부인하는 자들은 물러가라고 말하시오’라고 권했다. 폴리갑은 엄숙하고 진지한 얼굴로 경기장에 모인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군중들을 향해 손짓을 했으면 한숨을 내쉬면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불경한 자들은 물러가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총독은 계속 그에게 ‘맹세하시오. 그러면 풀어 주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비난하십시오’라고 졸라댔다. 폴리갑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86년 동안 그 분을 섬겨왔는데 그 동안 그분을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 임금님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총독은 그래도 계속 ‘신이신 가이사의 이름으로 맹세하시오’라고 재촉했다. 폴리갑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체하면서, 내가 가이사의 이름으로 맹세하리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 신앙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만일 당신이 기독교 교리를 알기를 원한다면, 나에게 하루의 여유를 주어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총독은 ‘백성들을 설득하시오’라고 말했다.
폴리갑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당시에게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해가 되지 않은 한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행정 장관들과 권세자들을 존경하라는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저 사람들 앞에서는 나를 변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총독은 ‘나는 사나운 짐승들을 준비해 두고 있는데, 만일 당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당신을 그 짐승들에게 던져 주겠오’라고 했다. 폴리갑은 ‘짐승들을 부르십시오. 우리는 선을 버리고 악으로 돌이켜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악에서 돌이켜 덕을 택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총독은 다시 ‘만일 당신이 짐승들을 멸시하며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을 화형에 처하겠소’라고 말했다. 폴리갑은 ‘당신은 잠시 붙었다가 꺼져 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장차 임할 심판과 악인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형벌의 불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지체하십니까?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은혜와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어떤 위협의 말이 가해져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놀란 총독은 전령을 경기장 한복판으로 보내어 ‘폴리갑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했다’고 선포하게 하였다.
전령의 성포를 들은 군중들, 서머나에 거하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그는 아시아의 교사이며 기독교인들의 교부이며, 또 우리의 신들을 파괴하는 자다. 그는 사람들에게 제사를 드리지 말고 예배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라고 소리쳤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아시아 의회원 빌립에게 사자를 풀어 놓아 폴리갑을 죽이라고 요청했다. 빌립은 이미 원형 경기장에서의 사냥 경기를 마쳤으므로 자기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폴리갑을 산채로 태워 죽이라고 소리쳤다. 폴리갑이 기도 중에 자신의 베게가 타는 환상을 보고 자 친구들에게 ‘나는 산 채로 타 죽을 것이다’라고 예언했던 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은 서둘러서 이 이일을 실천에 옮겼다. 군중들은 상점이나 목욕탕으로 가서 장작과 밀짚을 모아왔다. 특히 유대인들은 이 목적을 위해 한껏 봉사했다. 장작단이 마련된 뒤 폴리갑은 옷을 벗고 거들을 풀었다. 그리고 신을 벗으려 했다. 과거 그의 곁엔 경쟁적으로 봉사하는 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지 않았었다. 그는 늙기 전에는 모범적인 생활로 인해 큰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화형을 위해 마련된 도구들이 그에게 장착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큰 못으로 말뚝에 고정시키려 했지만 그는 ‘나를 이대로 두시오. 나에게 화형을 견뎌낼 힘을 주실 분께서는 당신들이 못을 박지 않아도 장작더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딜 힘도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못을 박지 않고 그냥 말뚝에 묶었다. 폴리갑은 마치 많은 양떼들 가운데 선택된 고귀한 희생물, 전능하신 하나님께 바쳐진 희생제물인 듯 두 손을 말뚝 뒤로 묶인 채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복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에 대한 지식을 주신 아버지시여! 당신 앞에 살고 있는 천사들과 천군들과 피조물, 그리고 모든 의인들의 하나님이시요!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순교자의 반열, 그리고 그리스도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시어 내 몸과 영혼이 성령의 썩지 않는 축복 속에서 영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겨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나는 신실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신 당신께서 예비하시고 계시하고 이루신 풍성하고 가납될 말한 제물로서 당신이 보시는 앞에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일을 인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영원한 대제사장을 통하여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리나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부터 영원히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그가 기도를 마친 뒤, 집행인들은 불을 붙였다. 불길이 크게 솟아올랐을 때 우리는 기적을 보았다. 그것을 보는 특권을 누렸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파하였다. 불꽃은 마치 바람을 맞은 돛처럼 오븐의 형체를 이루어 순교자의 육체를 담처럼 에워쌌다. 그 가운데 선 폴리갑의 몸은 전혀 불타는 육체 같지 않았다. 그는 마치 용광로에서 정련되는 금이나 은 같았다. 우리는 귀한 방향제에서 풍기는 듯한 향기를 느꼈다. 그의 육신이 타지 않는 것을 본 악한 박해자들은 집행인에게 그를 칼로 찌르라고 명령했다. 칼로 그의 몸을 찌르자 피가 솟구쳐 나와 불이 꺼졌다. 군중들은 택한 자와 불신자의 이러한 차이점을 보고 놀랐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은 택한 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시대에서 가장 훌륭하고 사도적이며 예언적 교사였다. 그가 말한 것들은 모두 이루어졌거나 장차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시기심이 많고 악의에 찬 대적, 의인들의 원수는 그의 순교의 영광, 한결같은 태도와 담화, 그가 불멸의 면류관을 쓴 것, 그리고 분명한 상을 쟁취한 것을 보고서는, 우리가 그의 거룩한 육체와 교제하기 위해 그의 시신을 달라고 간절히 요구했지만 내어 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헤롯의 아버지이며 달체(Dalce)의 형인 니세타스(Nicetas)를 은밀히 총독에게 보내어 시신을 주지 말라고 하면서 만일 그렇게 자지 않으면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혔던 사람을 버리고 이 사람을 예배하기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그를 불에서 구출할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우리를 경계하며 지켜보고 있었던 유대인들의 제안과 강권을 받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구원받을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를 버릴 수 없으며 다른 신을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 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섬기고 있다. 그리고 순교자 들은 자신의 임금이시며 주이신 분께 사랑을 바친 사람이므로, 우리는 그 분을 우리 주님의 제자이며 모방자라고 여겨 그에 합당한 사랑을 발휘한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참된 지기이며 동역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뜻이 완고한 것을 깨달은 백부장은 그를 불 가운데 세우고 이방인들의 관습에 따라 태웠다. 우리는 보물보다 귀하고 금보다 더 정련된 그의 뼈들을 모아 마땅한 장소에 안치했다.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우리가 그가 기쁘고 즐겁게 순교하여 하늘의 생명을 얻는 날을 축하하며 이미 경주를 마친 사람들을 기념하고 앞으로 있을 싸움을 준비하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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